도로명 이야기
항전과 충절의 방패, 동래읍성
동래로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읍성 일대를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지금의 부산 중심가는 서면이나 해운대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부산의 행정, 군사, 외교의 중심지는 바로 이곳 '동래(東萊)'였습니다.
이곳에는 가슴 시린 항전의 역사가 서려 있습니다. 1592년 4월 15일,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일본군 1군(고니시 유키나가)은 여세를 몰아 동래읍성으로 향했습니다. 성벽을 에워싼 적장 고니시는 나무 팻말에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거든 길을 빌려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라고 적어 보냈습니다. 즉,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주면 살려주겠다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이에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목판에 글을 적어 성 밖으로 던졌습니다.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
압도적인 전력 차이 속에서도 동래읍성의 군관민은 반나절 동안 결사항전을 벌였으나, 결국 성은 함락되고 수천 명의 군관민이 학살당했습니다. 송상현 부사는 조복으로 갈아입고 임금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한 뒤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그의 결연한 기개는 적장마저 감동시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송부사는 충렬사에 배향되었습니다.
현재 동래읍성 터를 굽어도는 동래로 곳곳에는 임진왜란 역사관과 충렬사 등 그날의 결의를 기리는 유적들이 점재해 있습니다.